어른들은 늘 얘기했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고. 그런데 아무리 휘파람을 불어도 뱀은 커녕 지렁이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나서야 그 말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둑한 지갑을 활짝 연 남자들이 그 기분에 들떠 휘파람을 부르기 시작하면 호구 냄새를 맡은 꽃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유명인의 이슈를 통해 꽃뱀이란 단어가 점화되고 있지만 일반인들 중에서도 꽃뱀의 피해자는 상당하다.
꽃뱀은 실제로 존재하는 파충류이기도 하다. '율모기'라고도 하는 '유혈목이'라는 뱀이 있는데 이 뱀을 보통 꽃뱀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뱀으로 전신에 꽃이 핀 것 같은 알록달록한 빛깔의 무늬가 있다. 신경 독을 갖고 있어 물리면 근육이 경직되고 호흡이 곤란해진다. 전신내출혈이 일어나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파충류든 사람이든 물렸을 때의 증상은 비슷한 것 같다. 그 충격으로 사고가 정지되며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소문은 경직된 상태를 지속시킨다. 법적 절차가 진행되게 되면 두통 및 현금출혈이 시작된다. 승소여부에 상관없이, 사망에 이르는 것과 맞먹는 타격을 받는 게 보통이다.
뱀은 욕망의 화신이다.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허물을 벗고 꽃뱀은 옷을 벗는다. 이런 꽃뱀들은 클럽이나 술집 등의 유흥가에 주로 서식한다. 요즘엔 스마트폰 어플도 그녀들의 활동범위를 넓히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어플을 통해 이성을 만나려는 남자들 중엔 자신감이 부족한 남자들이 꽤 많다. 오프라인에선 여성에게 사랑받지 못해 온라인에서 외로움을 달래는 남자들이 꽃뱀들의 주 먹잇감이다. 꽃뱀은 그들에게 호감이 있음을 어필한 후 정해둔 호프집에서 만난다.
볼품없는 호프집 메뉴판에 4만원짜리 감자튀김이 있다면, 아무리 그녀가 옆 자리에 앉아 달콤한 향기를 뿜어댄다 해도 낌새를 알아챌 법하다. 그런데 순박한 먹잇감들은 그저 그녀의 웃음에 혹해 안주를 시키고 양주를 마시며 몇 십, 몇 백 만원을 계산하기에 이른다. 꽃뱀은 여기서 뒷돈을 챙기는 방법으로 배고픔을 달랜다. 남자의 성욕을 자극하는 조건만남 쪽지를 보내 선입금을 요구하는 꽃뱀도 있다. 이들을 모두 '어플꽃뱀'이라고 부른다.
섹스 후 강간이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를 해서 합의금등을 뜯어내는 전통적인 수법도 여전하다. 유복한 집안환경 덕택에 대학시절부터 외제차를 몰고 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클럽에서 만난 미모의 여자가 꽤 적극적으로 형에게 대시를 했다고 한다. 두어 차례의 만남 후에 형과 여자는 섹스를 하게 됐는데, 다음 날 여자는 명품백을 요구했다. 백을 사주지 않으면 신고를 하겠다고 형에게 겁을 줬지만 형도 녹록치 않은 사람이었다. 귀찮은 일을 만들기 싫었던 형은 이태원에서 만든 S급 이미테이션 백을 사주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다.
회사로 내용증명이 날아와 호되게 곤욕을 치른 후배도 있다. 데이트를 즐기며 연애를 하자고 까지 말한 그녀는 역시나 섹스 후에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낌새를 차린 후배가 거리를 두자 다짜고짜 회사로 내용증명을 보낸 것이다. 후배도 변호사를 섭외해 소송절차를 치렀다. 그 후 얻게 된 교훈이라며 알려준 이야기는 오래전 형이 말해준 내용과 거의 흡사했다.
우선 너 자신을 알라. 본인의 능력으로 만나기 힘들 것 같은 미모의 여자가 갑자기 들이댈 땐 경계를 해야 한다. 외모가 화려하지 않지만 적극적인 육탄공세를 벌이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멀쩡히 유혹하던 여자가 갑자기 모텔 입구에서부터 취한 척을 하기 시작하면 우선 의심을 해야 한다. 이땐 반드시 CCTV를 쳐다봐야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여자가 계산을 하게 하라. 모텔 값을 내는 여자는 드문 만큼 본인의 카드를 줘서 여자로 하여금 계산을 하게 해야 한다.
여자가 불쾌감을 느낄까봐 도저히 계산을 맡길 수 없다면 녹음이라도 해라. 이 때 중요한 건 단순히 모텔에 먼저 가자했다는 발언만으론 승소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모텔에서 잠만 자려고 했을 뿐인데 이 남자가 강제로 추행한 거예요!"라는 진술을 하는 꽃뱀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반드시 스킨십과 섹스를 그녀도 원하고 있다는 식의 유도발언을 해서 녹음을 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게 꽃뱀에 당한 남자들의 공통적인 말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런 농담반 진담반의 조언이 다시 등장했고 남자들은 단단히 새겨듣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여자들이 한심한 듯 비웃었다. 안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여자 외모만 보고 혹 하는 철없는 남자, 혹은 섹스와 원나잇에 환장한 가벼운 남자들이나 그런 꽃뱀을 만나는 거라고 말 한다. 발끈한 남자들은 다시 이야기 한다. 남자 스펙에 혹해서 나쁜 남자인지도 모르고 빠져 버리는 여자들과 뭐가 다르냐? 그런 남자꽃뱀들이나 조심하라며 남자들이 말을 이었다. 심지어는 그런 스펙남들만 골라 만나며 그의 능력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생각하는 변종꽃뱀들이 늘어났다고.
미모를 이용해 지나치게 대우받길 즐기는 여자들도 꽃뱀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남자들의 생각이다. 범죄까지 발전하지는 않으므로 여우와 꽃뱀의 사이를 정확하게 나눌 수는 없지만. 협박만 하지 않을 뿐 이들이 데이트와 선물 등을 통해 누리는 금액은 전문 꽃뱀과 거의 흡사한 경우도 많다. 돈 많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서 돈 많은 남자를 찾는 건 문제가 없지만, 돈 많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돈 많은 남자를 만나는 건 문제다. 오빠에 대한 애정으로 아무리 합리화한들 본인 외엔 누구도 설득시키기 어렵다. 남자들 역시 그러한 여자들의 욕망을 역이용해 스스로의 욕구를 더 수월히 채우기도 한다. 당장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선 안 된다. 뱀의 시력은 약해서 아주 가까운 거리만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아름다움이 갖는 파워는 상당하다. 힘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천하장사의 옷을 벗기는 방법은 미녀의 말 몇 마디일 테니까. 그런데 반드시 육체적 아름다움만이 꽃뱀의 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름다운 꽃뱀보다 더 무서운 건 그 화려함을 숨긴 채 접근하는 여자들이다.
큰 범죄의 주인공들 중엔 얼굴 예쁜 꽃뱀이 드물다고 한다. 상하이 한국 영사 섹스 스캔들의 범인인 덩신밍은 대단히 평범한 얼굴이었다, 뚱녀 꽃뱀 살인사건의 키지마 카나에의 경우는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외모다. 남자든 여자든, 외모가 화려하지 않다 해서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당신의 경계가 꽤 견고하다면, 그걸 무너뜨리는 건 치명적인 미모가 아닌 그들의 화술일 거다. 뱀은 혀를 낼름거리며 냄새와 열을 감지한다. 당신의 돈 냄새와 사랑에 대한 열망을 파악하려는 꽃뱀의 혀를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서서히 독을 스며들게 한다. 그런 독이 더 무서운 법이다.
사진=영화 '타짜'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머니투데이 스타일M 김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