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7시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CJ대한통운 송파지점.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택배 상차 알바'에 나선 물류센터는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 사진=김민중 기자
17일 오전 7시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CJ대한통운송파지점.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택배 상차 알바' 체험에 나섰다. 기자가 찾은 물류센터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상자 수십 개가 줄지어 들어오는 컨베이어 벨트는 밀려드는 적군을 마주한 듯 공포 그 자체였다. 3시간여 동안 상자를 분류하며 기자의 몸은 녹초가 됐으나 택배 기사들은 "엄살을 피우지 말라"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설날을 맞아 전국 각지로 배송될 물품들이 이곳에 모였다. 대형 트럭에 섞여 들어온 옷과 전자기기, 액세서리 등이 담긴 택배 상자를 주소지에 맞게 분류했다. 1시간여 동안 박스 수십 개 중 배송지가 L아파트인 것을 골라냈다. "장미~ 진주~ 빠XX(파크로빌)~" 기사들끼리만 통하는 아파트 이름을 어느새 기자도 외치고 있었다.
곧 허리와 목에 '찌릿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주소지를 자세히 보기 위해 계속 상체를 숙이고 있었던 탓이다. 배송 스티커에 적힌 작은 글씨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L'자가 흐리게 보이기도 했다. 쉼없이 넘어오는 택배 상자들에도 택배 기사들은 한 손으로 상자를 보내는 노련미를 보였다.
택배 기사들은 이날 업무는 설 연휴 직전 '피크' 타임이었던 지난 9~12일쯤에 비하면 '약하다'며 웃었다. A씨는 "평소에는 오전 7시에 시작해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데 지난주에는 새벽 2시까지 근무했다"며 "하루에 1~2시간 잘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17일 오전 7시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CJ대한통운 송파지점. 설날을 맞아 전국 각지로 배송될 물품들이 이곳에 모였다. 대형 트럭에 섞여 들어온 옷과 전자기기, 악세서리 등이 담긴 택배 상자를 주소지에 맞게 분류해야 했다. / 사진=김민중 기자
설날이 지나면 택배 기사들은 하나씩 '병'을 얻는다고 말했다. 장모씨(45)는 "설날이 되면 눈물이 줄줄 흐르고 특히 팔이 뻐근하다"며 "오른쪽 팔 인대가 늘어나 바깥쪽으로 돌릴 수 없을 정도인데 설날엔 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사들도 설날이 지나면 허리, 목 디스크 등 통증을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설 연휴기간 "택배는 감정노동"이라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기사들도 있었다. 오모씨(43)는 "설날에는 선물 택배가 많다"며 "평소에 택배를 시키지 않던 고객이 선물 택배를 받을 경우 낯선 방문에 적대적으로 대한다"고 했다. 그는 "싸늘한 시선에도 배달하러 왔다는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문 앞에서 장기간 기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불과 몇년전만 해도 여기 작업장은 허허벌판에 천막으로 돼있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설날에 일할 때는 너무 추워 발목을 절단하고 싶기도 했다"며 "지금은 실내에서 작업해 옛날보다 훨씬 따뜻한 편"이라고 말했다.
또 설날 택배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고객들을 떠올리면 잠시나마 힘든 점을 잊는다고 강조했다. 이모씨(40)는 "힘들게 일한 만큼 설 연휴를 맞아 택배를 받는 고객들이 기뻐했으면 좋겠다"며 "택배를 받고 활짝 웃는 고객들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3시간여동안의 상차 작업이 끝난 후 택배 기사들은 모여 있는 대기실. 배송을 위해 출발하기 전 전표를 정리하는 기사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또잉, 또잉'. 바코드 읽는 소리에 이씨는 "돈 버는 소리"라며 웃었다. 이어 "열심히 벌어서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들이 원하는 걸 다 해주고 싶다"며 "이 맛에 설날에도 택배일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