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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는 설 명절 '눈물의 구직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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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1


박상한씨(73, 가명)가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에 제출한 이력서/ 사진=김유진 기자 

 

귀성행렬이 이어지는 설 명절, 한켠에서는 구직행렬이 이어졌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한때는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들은 이제 매일의 끼니를 위해 설 명절에도 이력서를 제출하고 인력시장을 맴돌았다.

 

"설? 괜히 괴롭기만 하지 뭐…"

 

박상한씨(73·가명)는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의 노인센터를 찾았다. 설 명절은 그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생각하면 괴롭기만 하다. 찾아올 가족도 없을 뿐더러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그는 독일 광부로 3년간 파견을 갔다 왔으며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한 참전용사다. 제대 후에는 현재 대한항공의 전신에서 근무하면서 강남땅 한 평이 2만원 가던 시절 하루 2만원씩 벌기도 했다. 참 풍족하게 살았다. 

 

자식 키우고, 투자를 했다가 망하는 등 세월의 풍파를 겪다보니 그 많던 돈은 신기루처럼 다 사라져버렸다. 그는 지금 전세 1000만원짜리 쪽방에 홀로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쪽방마저 주인이 며칠 전 "월세로 돌리겠다"고 선언하면서 경제적 상황이 너무나도 열악해졌다. 

 

나라에서 나오는 43만원의 연금만으로는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식비까지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월 20만원이라도 벌기를 희망하며 그는 이력서에 호소의 편지와 함께 전세계약서까지 첨부했다. 그러나 70대 노인을 채용하는 곳은 찾기가 힘들다.

 

명절을 앞두고 자녀들이 찾아오지 않겠냐는 질문에 박씨는 "자식들 이야기는 하고 싶지가 않다. 그 이야기까지 하면 너무 아프다. 여기까지만 해도 되겠나"라며 입을 다물었다. 

 

"두 다리 튼튼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는 팔 힘도 여전히 있는데 아무 곳에서도 써 주지를 않아요. 70 넘은 노인들은 아예 '폐급'으로 생각한다니까…."

 

33년을 서울시 관내의 한 구청에서 기술직으로 일했던 이명섭씨(66·가명)에게도 설은 괴로운 시간이다. 간암에 걸린 아내 병수발을 하며 사는 지금, 그에게 설이란 눈칫밥 먹으며 아들 집에 잠시 찾아가는 날이다. 다섯 손주녀석들 세뱃돈 마련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씨는 최근 지하철 노인택배 일을 하다가 그만뒀다. "지하철에서 내린 뒤 주문지점까지 찾아가는 데 드는 교통비는 내가 부담하고,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하니 배가 고파 종로에서 파는 2000원짜리 콩나물비빔밥 한 그릇 먹고 나면 수중에 남는 것이 없는 일이 노인택배"라고 그는 말했다.

 

아내를 가끔 병원에 데려가 모아둔 돈을 한번씩 '왕창' 쓰고나면 생계를 이어갈 돈이 남지 않는다. '대기업에 다니는 잘 키워둔 남매가 용돈을 안 드리느냐'고 물었더니 이씨는 "그런 것 전혀 없다"고 말한다. 요새는 사교육비에 돈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그는 자녀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나도 자식들 나이 땐 몰랐지. 그저 명절에 한 번씩 얼굴이나 비추고 몇 만원 쥐어드리고 오면 되는 건 줄 알았어.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도 말만 안 했지 지금의 나처럼 사셨겠다 싶어." 

 

박씨와 이씨의 취업을 알선해 주고 있는 강은미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장은 두 노인을 비롯해 일자리를 구해달라는 수백명 노인들의 이력서 뭉치를 보여주며 "지금의 대한민국 노인들은 '낀 세대'"라고 말했다. 70-80년대를 겪으며 가족과 나라에 모든 것을 내주고는 그 누구에게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시기라는 말이다. 

 

강 센터장은 "요새는 65세 이상 노인이라도 정말 건강한데 민간 시장에서는 받아들이는 곳이 없다"며 "게다가 사회 구조가 부모를 모시지 않고 부양의무를 지려 하지도 않기 때문에 빈민 생활을 하면서 일자리를 원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결국 지금의 부모세대가 생존할 수 있도록 노인 친화적인 일자리를 만드려는 고민과 실험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센터장은 "요새 노인은 정말 건강하기 때문에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관광객 안내 등의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말로만 말고 실질적인 뒷받침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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