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제(2월19일, 중국 설날) 전야제인 지난 18일 밤 11시40분. 베이징 곳곳은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폭죽 소리로 5시간 이상 들끓었다. 그중에서도 한국인 밀집 거주지인 왕징을 관통하는 광순다지에와 푸통다지에가 만나는 왕복 8차선 사거리는 폭죽과 불꽃, 매캐한 화약 냄새가 이미 점령하고 있었다.
밤 11시가 넘자 중국인들은 아예 한 차로를 막고, 40m를 올라간다는 50연발짜리 폭죽을 몇 상자씩 터뜨렸다. 한국 돈으로 1상자당 20만원이 넘는 것이다. 그중에는 어지간한 중국인 한 달 월급과 맞먹는 40만원을 호가하는 폭죽 상자에 아무렇지 않게 불을 당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이 남성들로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폭죽에 대한 이 과감한 투자는 악귀를 물리치고 한 해의 행운을 몰아준다는 믿음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폭죽의 시끄러운 소리에 악귀가 도망간다는 이 믿음은 그들이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보고 들은 문화였다.
왕징 따시양 아파트 곳곳의 공터에서는 이 믿음의 이력을 좀 더 세밀하게 볼 수 있다. 4살이나 됐을까 싶은 남자 아이가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폭죽에 불을 붙였다. 여자아이들은 터지지 않고 불꽃만 타오르는 폭죽을 손에 쥐고 흔들며 놀았다. 어떤 집에서는 아직 첫 돌이 한참 남은 아기가 놀랄까봐 창문을 열진 않았지만 아기 엄마가 의식처럼 아기를 폭죽이 터지는 방향으로 안아 세웠다.
따시양 아파트의 경비원 10여명은 단지 내 폭죽놀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소광장 곳곳을 지키며 만에 하나 벌어질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비했다. 중국인 특유의 춘제 문화로 '먹거리는 만두, 놀이는 폭죽'이라고 할만큼 그들이 얼마나 폭죽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 폭죽은 동전의 양면 같기도 하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 실제 돈을 주고 폭죽을 구입해 이를 터뜨리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0%도 되지 않는다. 19일 신화망에 따르면 올해 베이징의 폭죽 판매량은 8만3000여 상자로 지난해보다 34% 감소했다. 이날 신징바오도 전날 밤 베이징에서 터뜨린 폭죽 관련 잔재들을 수거한 결과 30.2톤으로 지난해(41.5톤)에 비해 27%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 당국의 춘제 폭죽 문화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2009년 CCTV 신사옥이 전소됐을 정도로 매년 폭죽에 따른 화재 피해가 끊이지 않는데다 워낙 많은 폭죽을 터뜨리다보니 스모그 같은 환경 오염을 부추긴다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폭죽을 터뜨리기 전인 지난 18일 오후 2시 이전만 해도 베이징의 PM 2.5(지름 2.5㎛ 이하 초미세 먼지) 농도 수치는 30㎍/㎥로 모처럼 맑은 날씨였다. 하지만 폭죽놀이가 본격화한 밤 9시에는 PM 2.5 농도가 200㎍/㎥을 넘었다. 폭죽의 대기오염은 이미 한 두 해 된 이야기가 아니다. 폭죽이 터진 후 공기 중에는 황과 수은, 납 같은 해로운 물질이 많아진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런 이유로 베이징 시당국은 파란색(4급)→ 황색(3급)→ 오렌지색(2급)→ 빨간색(1급) 순으로 강화되는 스모그 주의경보 단계 중 황색 단계부터는 폭죽 판매는 물론 폭죽놀이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아예 상하이 등 138개 지역에서는 올해 춘제 기간 중 폭죽을 원천 금지하는 강경책을 내놓기도 했다.
전통 폭죽이 폐해가 많은 만큼 이른바 ‘전자폭죽’으로 이를 대체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중국 정부도 전자폭죽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전자폭죽은 폭죽 소리 대신 전기로 압축 공기를 일으켜 소리를 내고, 불꽃 대신 전기조명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화약폭죽 특유의 화재 위험이나 공기 오염, 인명 피해, 잔재 같은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 화약폭죽 자리를 넘보는 이유다. 화약폭죽처럼 1회용이 아니라 반영구적이라는 것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도화선에 불을 붙이지 않고 스위치를 누르는 이 전자폭죽을 중국인들이 얼마나 사랑할지는 미지수다. 아직까지 60m를 날아올라 국화 모양 불꽃으로 사그러 지거나 100발을 연달아 쏠 수 있는 전자폭죽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국 폭죽 문화의 두 얼굴을 한꺼번에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기업이 한 곳 있다. 바로 중국 최대 폭죽기업으로 유일한 중국 A주 상장사인 슝마오옌화다. 이 슝마오옌화의 온라인몰에는 8800위안(한화 154만원)짜리 폭죽 세트가 버젓이 팔리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슝마오옌화는 중국 정부의 폭죽 규제가 갈수록 심해지자 지난해 영화 미디어 기업을 인수하며 사업 다각화를 노리고 있다.
"폭죽 소리에 묵은 해가 걷힌다(爆竹一?除??)"고 믿는 중국인들이 앞으로 춘제 폭죽 문화를 어떤 식으로 바꿔갈 지 주목된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