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수석 부총재 데이비드 립튼/머니투데이
원유를 비롯한 상품가격 하락, 달러 강세, 미국의 잠재적인 기준금리 인상 등이 새 금융위기의 전조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세계적인 파생상품·리스크 관리 전문가로 '익스트림 머니'의 저자인 사티아지트 다스는 24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상품가격 하락, 달러 강세, 미국의 금리인상을 둘러싼 공포 등이 금융위기가 아시아를 휩쓴 1997-98년과 무시무시할 정도로 닮았다며 이는 새로운 위기의 전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약한 성장세, 과도한 부채, 물가승세가 둔화되는 디스인플레이션이나 불황 속에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통화절하 경쟁(환율전쟁), 금융 리스크 확대 등이 맞물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며 순차적인 위기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强달러 美 증시 압박
다스는 우선 미국 증시가 강달러 여파로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뉴욕증시 대표지수인 S&P500지수에 편입된 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이 40%나 되기 때문에 달러 강세가 미국 수출기업 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미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또 미국 증시 선도 업종 가운데 하나인 에너지업종은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다스는 실적 악화와 맞물린 유동성 압박이 주가 부양 재료인 M&A(인수합병)와 자사주 매입(바이백)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권시장 '스트레스'
그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원인 채권시장의 스트레스도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특히 부채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기업과 신흥시장 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바클레이스가 내는 미국 투기등급 채권지수의 에너지 기업 비중은 2005년 5% 미만에서 최근 15%로 높아졌다.
최근 국제유가 급락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셰일개발업체들의 부채는 총 영업이익의 3배가 넘는다.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 멕시코 페멕스, 러시아의 가즈프롬 등 신흥국 국영 에너지회사들도 채권시장 의존도가 높아 취약하긴 마찬가지다.
◇신흥시장 외자이탈
다스는 신흥시장의 취약성도 심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자재 생산국의 경우 상품가격 하락으로 고전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기업들이 부채를 늘리는 악순환을 부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신흥시장 전반에 대한 재평가를 재촉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달러 강세, 미국의 금리인상은 신흥국의 달러 빚 부담을 가중시킨다. 신흥국의 취약성이 현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면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이 불가피하고 이는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커지는 배경이 된다.
◇달러 유동성 부족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긴축 움직임에 따른 유동성 문제도 나타날 전망이다. 다스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일본, 중국이 경기부양 자금을 더 쏟아내도 FRB가 지난해 양적완화를 중단한 데 따른 달러 유동성 부족을 상쇄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유가 하락으로 오일달러도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흘러넘쳤던 오일달러는 그동안 세계 각국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자산 가격을 띄어 올리는 밑천이 됐다.
◇정책 실수 가능성↑
마지막으로 다스는 저성장과 저인플레이션, 국채시장의 불안정 등이 한 데 맞물리면서 금리인상, 유동성 회수, 외환시장 개입, 무역장벽 등과 관련한 정책 실수 위험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러시아와 이란에 대한 서방의 제재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합병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스는 일련의 위기 시나리오가 결국 자산 가격을 압박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자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사이 파산, 디폴트(채무불이행), 은행위기 등이 전이되면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다스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회복세를 뽐내는 미국도 위험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S&P500 기업의 총 자본지출, R&D(연구개발) 투자의 25%가 에너지업종에서 나온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저유가가 투자, 고용, 소비 저하를 상쇄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금융시장에선 각국 정부가 자산 가격을 떠받칠 것으로 기대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정책 선택지를 모두 소진한 탓에 새 위기에 대응할 여력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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