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에는 언제나 처세서(자기계발서)가 떴다. 미국의 대공황기에는 데일 카네기가 떴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친구를 얻고, 사람에게 영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엄청나게 팔리는 바람에 이후 카네기는 대중심리학의 대가로 일컬어졌다. 일본의 버블 붕괴기에는 하루야마 시게오의 ‘뇌내혁명’이 떴다. “버블경제가 붕괴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긍정적인 사고를 해 나가면 언젠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다는 환상을 제시한 것”이 성공 이유였다.
우리는 어떤가? IMF 외환 위기에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들고 혜성 같이 나타난 구본형이 떴다. 대량실업 시대에 필요한 생활철학을 제시한 이 책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구본형은 한국형 자기계발서의 선구자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카드대란’이 터졌던 2003년에는 한상복(한설)이 떴다. 부자들에 대한 해부형 재테크서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부자들’은 우리 사회가 ‘월급형’ 사회에서 ‘자금운용형’ 사회로 바뀌고 있음을 알려줬다. 이후 한상복은 밀리언셀러가 된 ‘배려’를 비롯한 히트서적을 꾸준히 펴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엄습했던 2008년에는 전해부터 출판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시크릿’의 독무대였다.
2013년에 자기계발서가 ‘거대한 사기극’(이원석)에 불과했다는 주장이 나오고부터는 자기계발서가 크게 위축됐었다. 최악의 경제 위기가 올 것으로 우려되어서일까? 그럼에도 자기계발서 한 권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독주하고 있다. 과거(능력과 성격)에 연연하지 말라, 네가 지금 노력하기에 달렸으니 용기를 가져라는 등의 메시지를 담은 ‘미움 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외, 인플루엔셜)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국내에서 현재 가장 있기 있는 저자인 김정운 박사의 추천, 프로이트·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들러의 가르침을 쉽게 대화체로 설명한 것, 아들러 심리학이 “고루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진리이자 도달점”이라는 저자의 설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이 일본에서 인기를 끈 것은 아들러의 주장이 ‘사토리(득도) 세대’의 의식구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보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유토리 교육’을 받았고,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해 방대한 정보를 얻는 사토리 세대는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겠다는 의욕이 없고, 도박을 하지 않고, 해외여행에 관심이 없고, 대도시보다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관심이 많고, 연애에 담백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이 책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한국의 젊은 세대도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성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미래에 대한 포부 대신 ‘지금 여기’라는 신변에서 가까운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에 빠진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좀 슬프지 아니한가?
머니투데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