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럽(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관세가 사라진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럽차들의 국내 시판가격은 오히려 인상돼 '가격 횡포'라는 지적이다. 관세가 인하될 때마다 찔끔 가격을 내렸다가 이후에 다시 왕창 올리는 방법으로 국내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12년 5190만원에 판매되던 메르세데스-벤츠의 'C220' 모델은 2013년 관세가 1.6%까지 낮아졌는데 판매가는 5300만원으로 인상했다. 2.1%나 올린 것이다. 지난해는 관세가 완전 철폐됐는데도 신모델이라는 이유로 가격을 무려 5.6%나 올려 560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2011년부터 한-EU FTA가 발효된 이후 8%에 달했던 관세가 완전히 사라졌는데 차값은 지난 3년동안 4.3%나 올린 것이다.
폭스바겐 '티구안 2.0 블루모션'은 2010년 판매가격이 4330만원이었는데 2012년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되면서 4480만원으로 올랐다. 이후 2012년 7월 유럽차 관세가 3.2%로 낮아지자, 판매가를 4450만원으로 잠시 인하했다가 2013년초 물가상승을 이유로 4510만원으로 인상했다. 30만원 내렸다가 60만원을 올렸으니 차값은 30만원 올랐다는 결론이다. 지난해 관세가 완전히 없어졌는데도 폭스바겐은 티구안을 2013년 1.6%로 낮아진 관세에 맞춰 인하한 4480만원의 가격에 그대로 팔고 있다. 한-EU FTA 발효전보다 차값이 3.5% 가량 인상됐다.
메르세데스-벤츠의 'S350'의 경우도 지난해 관세가 쳘폐된 이후 차값을 1.8% 인상해 1억2820만원에 팔고 있고, 재규어 'XJ 3.0'은 1.2% 인상한 1억3970만원에 팔고 있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3.0 역시 1% 가량 인상한 9360만원에 차를 팔고 있다.
수입차는 지난해 국내에서 19만6000여대가 팔렸는데, 이 가운데 독일차가 13만6322대로 가장 많았다. 점유율이 무려 69.4%에 달했다. BMW가 판매대수 4만174대로 1위를 했고, 메르세데스-벤츠가 3만5213대로 그 뒤를 이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도 3위와 4위를 나란히 랭크해 독일차 4총사의 질주가 이어졌다. 여기에 지난해 2976대가 팔린 스웨덴 차와 1158대가 팔린 이탈리아 차량 등까지 합치면 국내 수입차 시장은 사실상 유럽차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럽차들은 국내 시판가에 8% 관세 철폐만 반영하지 않은 게 아니다. 한-EU FTA 발효 이후에 유로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는데도 이를 차값에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한-EU FTA 발효 당시인 2011년 유로·원 환율은 1유로당 1500원대였다. 하지만 올 2월 1유로당 1245원으로 낮아졌다. 유로화 가치가 약 17% 가량 떨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관세 철폐로 유럽차에 대한 제반 세금도 줄었다. 통상 관세가 붙을 때는 수입원가에 관세까지 합쳐진 금액에 5% 개별소비세가 매겨진다. 그러나 관세가 없으면 수입원가에만 개별소비세가 붙는다. 그만큼 세금이 줄어 차값도 낮아진다. 여기에 개별소비세의 30%에 달하는 교육세가 부과되고 10%의 부가가치세까지 붙는데, 관세 철폐로 이 세금의 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 따라서 관세 8%가 사라졌지만 실제 차의 판매가격은 관세인하분보다 훨씬 많이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재규어랜드로버 등은 8%에 달하던 관세뿐 아니라 교육세와 부가가치세 등도 줄어들고 유로화 가치도 3년새 17% 떨어졌는데 이를 차값에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상품성 개선과 신모델 출시를 이유로 지난 4년간 차값을 더 올린 것이다.
벤츠 등 유럽차들은 8%에 달하던 관세가 5.6%로 낮아진 2011년 7월 이후 차값을 1.4% 가량 내렸다. 이듬해 관세가 다시 3.2%로 낮아지자, 차값을 1.4% 인하했다. 1년에 관세는 2.4%씩 떨어졌는데 차값은 그 절반인 1.4%만 내렸다. 2013년 7월 3차로 관세가 1.6%로 인하되자, 이때도 차값을 1.2%만 내렸고, 관세가 완전히 사라진 지난해는 차값을 1.8% 인하했지만 대부분 일시적 인하에 그쳤다. 새 모델 출시를 계기로 차값을 한-EU FTA 협상전보다 더 비싸게 올린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는 "수입차 업체들이 관세가 내릴 때마다 가격을 찔끔 내렸다가 다시 가격을 왕창 올리는 방법으로 소비자들이 가격인상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면서 "관세 철폐와 함께 유로화 가치 하락이 국내 진출해있는 유럽차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