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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위세가 당당한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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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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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은 우리나라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이었다. 길거리 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었는데 올해는 다른 해보다 더 큰 태극기를 준비한 것 같았다. 
광화문 거리에도 어김없이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꽃샘바람은 세게 불고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똑같았을 것이다. 

근 100년 전의 대한민국, 1919년은 일제강점기였고 일체의 국권이 일본에 있었고 우리 민족은 처참한 생활로 연명하고 있었으며 급기야는 고종황제까지 독살했다는 그 시절이었다.

고종황제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각계 각층 지도자들이 나라를 찾겠다는 굳은 의지와 결심으로 1919년 3월 1일 근대화의 중심지인 종로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전 국민이 합심하여 궐기했고 이는 대한제국의 독립의사를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된 것이었다. 

열여덟의 유관순열사가 이 운동을 주도를 했다니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다. 그녀가 일본 수사관에게 고문을 받을 때 한 말이 있다고 한다. 

“너희가 내 손톱을 다 빼고 코를 베고 귀를 잘라도 두렵지 않다. 나는 다만 내 나라가 독립하는 것만이 나의 영원한 염원이다” 

이리 당찬 아가씨가 우리나라를 구원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으니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말이다. 사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말이고 정신인 것이다. 

이 시대의 러시아는 어떠했는가?

이 말을 하기 전에 한국과 러시아의 닮은 점을 이야기 하자면 과거 역사적으로 두 나라는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쳐들어가는 것보다 외세의 힘에 침략당하고 괴롭힘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1200년 대에 이미 몽골의 침략으로 200년을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치욕적인 멍에를 지고 살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안간 힘을 써 1480년 모스크바 이반 3세가 강력한 리더의 힘으로 몽골의 지배를 거부하고 종식시켰다. 그 뒤로 유럽의 황제 나폴레옹이 침략해 왔는데 이는 오히려 러시아가 자기들의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단결심을 구축하고 끈질긴 인내심과 강인한 조국수호 정신으로 러시아의 승리를 가져오게 했다. 

특히 나폴레옹 대군을 무찔렀던 “꾸뜨조프”장군의 활약이 대단해서 지금도 모스크바 한 복판에 “꾸뜨조프” 대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기념 전시관에서는 영상으로 그 때의 상황을 보여주고 학생들도 자주 찾아와 그를 기린다. 그 거리로 가끔 총알처럼 달리는 리무진들의 행렬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러시아 최고 권력자가 타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 전쟁이 끝나자 크림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슬라브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터어키와 크림전쟁을 치르고 또 반 세기 후 러.일간 화평조약을 깬 일본이 1904년에 여순항을 통해 기습적으로 쳐들어와 또 다시 치욕적인 고배의 잔을 마시게 된다. 그리고 다시 독일의 도발로 1914년부터 시작된 세계 1차 대전에 러시아 자국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엉망인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의 차관을 빌려 쓴 것을 계기로 경제적 예속관계에 놓이게 되어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로 러시아는 공산주의라는 세기적인 대변혁을 맞이하게 되는 운명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러시아는 낙후되고 경제적인 낙오는 곧 정치적으로도 낙오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 역사는 이렇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한탄스럽게 한 말이 “몽골의 칸이, 투르크의 총독이, 스웨덴의 왕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영주가,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가가, 일본의 군벌이 끊임없이 우리를 짓밟아 왔다” 였다고 한다. 그리고 1941년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쉴 틈도 없이 다시 전쟁의 불구덩이에 뛰어들게 된다. 그 때(세계 2차 대전)의 소련은 물질적 정신적인 손실을 제쳐 두고라도 인명피해가 2천 600만명으로 참전국의 반절을 차지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숫자인 것이다. 

지금까지도 가장 이를 갈고 분을 참지 못하는 사건은 레닌그라드 공방전이다. 지금의 상 페테르브르그인 레닌그라드를 독일군은 900일을 봉쇄했다. 그 기간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하루에 125g의 빵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초코파이 2개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도시 인구의 1/3이 기아와 질병과 추위로 죽어갔다고 하니 그 참상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러시아 사람들은 현재도 독일과의 싸움을 기억하며 치를 떤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러시아 사람들은 얼어붙은 네바강을 통해 운반 가능한 유전공학연구소의 각종 식물종자를 고스란히 보존했고 도시의 건축물들은 진흙과 철망으로 방비를 해 적의 폭격으로부터 지켜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러시아에서는 각종 전쟁을 겪고 이겨내고 살아남은 노인들에 대한 예우는 각별하고 극진하다. 노인들 자신부터가 가지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남녀를 불문하고 옛 시절의 군복에 전쟁시에 받았던 훈장들을 어깨가 휠 정도로 달고 국경일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국기를 흔들며 환호한다. 필자가 러시아에 갈 때만 해도 공산주의 국가는 애국심도 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뿔사! 였다. 그들의 애국심은 한국을 능가했고 그걸 보는 필자로 하여금 가슴이 서늘했던 경험이 있다.

평소에도 노인들의 태도는 당당하고 떳떳하다. 자기들이 전쟁을 막아내고 지금의 러시아를 건설하는데 한 몫을 했다는 긍지감으로 젊은이들에게 여지없이 큰소리로 나무라고 훈계를 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이들은 즉각적으로 당연히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안에서도 아주 꼿꼿이 어깨를 펴고 젊은이들을 대한다는 점이었다. 

아마 이런 점들이 알게 모르게 젊은이들에게 이어져 내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또 간직하게 될 것이며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데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그래서 행동으로 본은 보이는 러시아 노인들의 정신력은 본받을 만하지 않을까.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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