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다니는 김 모씨는 지난 2일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만 생각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입학식 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조르던 아들에게 안된다며 화를 낸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지난해 김씨는 전세난에 어쩔 수 없이 1억7000만원을 대출받아 집을 장만했다. 월세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 원리금(약 110만원) 부담도 만만치 않아 결국 외식 등 소비를 줄이는 긴축을 결정한 것.
김씨는 “월급의 4분의 1가량이 대출 원리금으로 빠져나가면서 여유가 싹 사라졌다”며 “교육비와 기초 생활비를 빼고 모두 줄이는데도 살림살이는 갈수록 쪼들리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저금리 기조 속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내놓은 주택매매 활성화 일변도의 부동산정책이 자산효과(Wealth effect, 자산가치 상승으로 소비가 증가하는 효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내수침체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비판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완화, 재개발·재건축 촉진책 등 주택거래량을 인위적으로 늘리기 위한 정책들이 집값을 견인하기보단 가계부채를 키우고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시키면서 ‘주거비 부담 상승→가계소비 위축→내수침체’란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5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금융감독원의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에 따르면 저금리 기조속에서도 주택담보대출 증가 등으로 대출 규모가 늘면서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커졌다.
실제 부채가 있는 가구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은 2013년 1011만원에서 지난해 1175만원으로 16.1%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가처분소득은 4123만원에서 4357만원으로 6.1%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에 따라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비율(DSR)은 24.5%에서 26.9%로 높아졌다. 특히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DSR은 지난해 70% 가까이 치솟았다. 빚을 갚는데 소득의 대부분을 쓰고 있는 것으로, 그만큼 소비여력은 줄 수밖에 없다. 소득 2·3분위 가구 역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DSR이 각각 36%, 31%를 넘어섰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주택금융규제 완화로 가계부채가 확대되면서 취약계층의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소득이 늘지 않는 한 주거 관련 비용이 커지면 소비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가계의 빚 부담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가 지난해 8월 주택매매 활성화를 위해 LTV(주택답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풀면서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서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4분기 동안 18조원 이상 증가한 데 이어 지난 1~2월에도 이례적으로 3조4000억원 늘어났다. 이는 전년동기대비 8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집주인들의 빚 부담이 커지고 있다면 세입자들은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201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임차가구 중 월세가구는 55%로, 2년 전보다 4.5%포인트 늘어났다. 반면 전세가구는 2012년 49.5%에서 지난해 45%로 감소했다.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만 해도 전세가구 비중이 55%로 월세(45%)보다 높았지만 6년 만에 상황이 역전된 것. 올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전체 전·월세거래량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40%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43.5%까지 치솟았다.
월세가구가 늘고 있다는 것은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순수 월세의 월 거주비는 103만7000원(전·월세전환율 7.7%)으로, 전세(43만원, 평균 보증금 1억6156만원*연간 이자율 3.2%) 2.4배가량 높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저금리 기조에 정비사업 이주수요까지 겹치면서 전세난이 심화되고 반전세 형태가 늘고 있다”며 “전·월세전환율이 시중금리보다 높아 월세 전환 시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그만큼 소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머니투데이 임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