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에 사는 윤모 씨(70)는 지난해 지하철 노인택배업체에 취업한지 닷새만에 그만뒀다. 돈벌이가 안 됐다. 오전 9시부터 서울시 충무로역부터 아산시 신창역까지 두번 갈아타는 건 65세 이상이라 무료였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배송목적지까지 버스를 타야 했다. 결국 사비를 들여 다녀왔지만, 30%가 넘는 수수료까지 떼고 나니 수중에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5kg에 가까운 택배상자를 들고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더니 예전에 부러졌던 발목에 통증이 왔다.
#서울시 성북구의 서모 씨(66)는 이웃동네 아파트로 출근한다. 1만2800여 세대가 모여 사는 길음 뉴타운 아파트 단지다. 오전 10시30분에 협력회사 택배차량이 단지로 들어오면 그는 동료들과 함께 배달할 상자들을 아파트 동별로 분류한다. 서 씨는 자신이 맡은 동으로 갈 상자들을 손수레에 싣고 가 집집마다 전한다. 멀리 갈 필요가 없으니 무거운 택배상자를 들고 지하철도, 버스도 탈 필요가 없다. 그러고도 명절 등 일이 많은 달엔 100여만 원을 벌었다. 인센티브를 많이 받은 덕분이었다. 서 씨는 이 일이 좋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오늘 어디 가서 할 일이 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우리 집에서 여기 오는 데 버스 타고 30분은 걸려요. 그런데 내가 왜 여기까지 오겠습니까? 그만큼 좋으니까 오는 거죠.”
사회적기업 (주)살기좋은마을의 택배기사들은 다른 노인택배회사와는 달리 '기본급'으로 38만9000원을 받는다. 이들은 일주일에 4일, 하루 4시간의 근무시간만 지키면 하루 1건의 물량만 배송해도 기본급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더 많은 일을 한다.
대개 60~70대 노인들이지만 이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택배물량은 평균 40~50건에 이른다. 어떤 이는 하루 200여건을 배송하기도 한다. 하루에 41개 이상 배송하는 날엔 건당 400원의 인센티브를 받는다.
이렇게 환상적인 업무 조건을 만들어낸 비결이 뭘까? 정부 지원, 택배회사와 벤처 등 다른 회사와의 협력, 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기반으로 한 협력과 연대 구조, 그리고 경영 혁신이 그 비결이었다.
◇투자금 1500만 원으로 시작...취약계층 23명 일자리 창출 성공
(주)살기좋은마을은 성북구 길음뉴타운단지를 기반으로 공동택배 즉 마을택배와 우편물류, SH공사 경과형 일자리 창출, 재활용사업을 하는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이다. 2012년 설립 후 사업 첫해에 매출 1억 원을 달성한 이래, 지난해에는 2억 4000여만 원의 매출을 냈다. 덕분에 65세 어르신 18명, 취약계층 5명 등 23명 일자리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올해엔 무인물류시스템 사업에 진출하면서 매출 목표를 8억 원으로 잡고 있다.
투자금 1500만 원으로 시작했지만 이 돈보다는 공공 부문, 지역사회와 주민 등 사회 협력망이 더 큰 힘을 줬다. 이 업체는 2012년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서울시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으로부터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파트주민과 지역복지관의 도움이 컸다. 마을택배기사들이 택배상자들을 배송지별로 분류하려면 불가피하게 아파트 단지 앞에 상자들을 쌓아두고 작업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주민들이 허용하지 않으면 마을택배의 배송시스템은 돌아갈 수가 없다. 오범석 살기좋은마을 대표이사는 주민들과 길음사회복지관의 도움 덕분에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게도 길음뉴타운아파트 2,3,4단지 주민들이 먼저 문을 열어주셨어요. ‘우리 동네 어르신들 일자리 마련을 위한 일인데 적극 도와야죠’ 라고 하시면서요. 핵심 파트너인 길음사회복지관이 도와줘 그 과정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었어요.”
이곳 주민들은 동네 어르신들께 마음을 연 대신 마음에 평화를 얻었을 것이다. 택배 서비스를 받기 위해 낯선 사람한테 현관문을 열어줘야 하는 불안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정부 예산 효율성도 높이고 좋은 일자리도 만들고
또 하나의 성공비결은 정부 복지예산의 적극적인 활용에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매년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해 각 지자체에 예산을 배정한다. 주 4일 근무하면 일자리 형태에 따라 월 최소 13만~20만 원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주는 입장에선 적지 않지만 받는 입장에선 한 달 생활비로는 부족한 돈이다.
목사로서 노숙자 주거사업을 하다가 이 지원예산을 알게 된 오 대표는 ‘여기에 사회적 경제가 참여해서 소득을 증대시켜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노동집약적인 사업, 그중에서도 택배사업이 오 대표의 눈에 들어왔다. 정부, 지자체, 택배회사, 지역복지관, 주민들이 협력하는 마을택배구조는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의 마을택배 업무는 지자체가 지급해주는 기금에다 최저임금제를 더해 기본수당을 지금의 약 두 배로 올려드렸어요. 또 체력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는 분들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더 많은 급여를 받으실 수 있도록 했지요.”
기존과 동일한 예산을 투여해 더 편하게 일해도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했으니 정부 입장에선 예산 효율성을 높인 셈이다. 복지 분야에서 사회적 경제 조직이 경영 혁신에 성공하면 복지예산의 효율과 복지증진 효과는 동시에 높아진다.
◇소셜벤처와 손 잡고 무인택배사업에 진출..."모두에게 좋은 일하자"
오 대표와 살기좋은마을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무인택배시스템 '미유박스'를 운영하는 물류 인터넷 벤처기업 '파슬넷'과 손잡고 남대문 삼성생명 본관, 길음 뉴타운 1동 주민센터 별관 앞, 성균관대 학생회관, 구로 디지털 역 앞 원룸 단지, 중곡시장에 무인택배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하루 3000개의 물류를 취급하는 기업 2곳과도 계약을 앞두고 있다.
파슬넷은 2012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주최 소셜벤처경연대회 일반 아이디어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는 소셜벤처이기도 하다. 오 대표는 "다른 기업과 컨소시움 형태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유효했다"면서 "궁극적으로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발전시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더 궁극적인 목표는 회사 이름처럼 길음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 동네의 해결과제는 크게 4가지입니다. 일자리와 복지, 문화공동체 활성화 그리고 교육이요. 그래서 지역주민과 지자체가 함께 하는 '참 길음 공동체 사업단'을 꾸렸습니다. 우리 기업을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관은 복지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힘씁니다. 아름드리도서관은 방과 후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돌봐주고요. 일 년에 서너번은 지역주민이 모여 힐링장터를 열어 책을 나누고 기부금도 나누고 공동체로서 결속을 다지지요. 이런 성과들이 모이면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 않을까요?"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