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가 폐지된 후 배우자의 불륜 상대방이 배상해야 하는 위자료 액수를 획기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여기서 위자료는 이혼시 받는 금원 전체가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만을 뜻한다). 외도를 형사적으로 응징할 수 없게 됐으니 외도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면 위자료 액수라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가사사건을 다룬 필자로서는 '과연 그럴까?' 싶다. 간통죄 폐지 전 과연 간통죄가 가정파괴를 '예방'하는 기능을 했는지부터 매우 의문이다. 그동안 간통죄는 형사처벌을 꺼리는 불륜 배우자와 외도 상대방을 압박해 이혼시 돈을 더 받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륜 상대방의 위자료를 획기적으로 올려 간통죄의 가정보호기능을 대신하도록 하자는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형사처벌로도 못 막던 것을 위자료 액수를 올린다고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배우자의 불륜 상대방이 지급하는 위자료 액수를 지금보다 올려야 한다는 데는 찬성이다. 현재 우리 법원이 불륜 상대방에게 물리는 위자료는 최저 수백만원에서 최고 3천만원 정도. 가끔 이례적인 경우가 있지만, 이혼 여부, 성관계 증거 유무, 관계지속기간 등을 고려해 이 범위 내에서 위자료가 결정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아내가 둘째아이를 임신한 동안 다른 여자를 만나 성관계를 하고 '아내가 출산하면 이혼하고 결혼하자'고 한 경우 상간녀가 부담한 위자료는 1000만원(조정 금액)이었다. 이혼하지 않은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유부남인 사실을 알면서 1년 넘게 지속적으로 만나고 하루에 수십차례 문자를 교환해 결국 이혼에 이르게 한 경우 상대 여성이 부담한 위자료는 3000만원(조정 금액)이었다. 이 경우 성관계 증거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이혼에 이르게 된 점과 당사자들이 전문직으로 고소득인 점이 참작됐다. 유부남이 20세 어린 여직원과 몇 개월 동안 교제하며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한 경우 여직원이 부담한 위자료는 500만원(판결 금액), 6년 간의 불륜으로 결국 이혼에 이른 경우 상간녀에게 인정된 위자료 2000만원(판결 금액) 등 위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재의 위자료 액수가 많은지 적은지는 당사자들의 반응을 보면 안다. 위자료를 받는 쪽은 예외 없이 '말도 안 되게 적다'고 펄펄 뛰고, 위자료를 내는 쪽은 대개 '그 정도는 감수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현재의 위자료 액수가 적정선보다 적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불륜 상대방이 부담하는 위자료 액수가 적은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법원의 위자료 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은 이혼 위자료를 대개 3000만원 내외에서 책정하기 때문에 불륜의 경우에도 이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요즘은 가끔 이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위자료 판결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직도 대세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우리 법체제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불륜 위자료가 몇억원씩 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배상을 받는 당사자들이 하나같이 정신적 고통을 위로받지 못할 정도라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액수를 올려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 법체제 내에서 가능한 액수는 얼마여야 할까? 정신적 고통을 숫자로 환산한 홈즈와 라헤의 스트레스 순위표를 빌어 계량화를 시도해보자. 이 표에 의하면 배우자 사망은 스트레스 1순위 스트레스 지수 100, 이혼은 스트레스 2순위 스트레스 지수 73이다. 그렇다면 사망 위자료의 70% 정도는 이혼 위자료로 인정돼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교통사고나 산업재해로 숨진 경우 피해자 유족에게 인정되는 위자료가 1억원(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15년에 상향조정한 금액)이니 불륜으로 이혼에 이르게 된 경우 불륜 상대방이 부담하는 위자료는 7000만원 정도가 적정하지 않을까 한다.
머니투데이 조혜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