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같네.” 유재석의 혼잣말 위로 ‘주부 포스’라는 자막이 겹쳐졌다. MBC [무한도전] 식스맨 후보로 거론된 이효리가 자신이 아닌 남편 이상순의 이름을 거론하며 완곡하게 스카웃을 거절하는 순간의 일이었다. “한 명이라도 벌어야지”라는 이효리의 말은 친밀한 사이에 주고받기 쉬운 가벼운 농담일 뿐이었지만, 방송은 그녀의 한마디에서 억척스럽고 계산적인 ‘주부’의 모습을 찾아내 캐릭터로 부각시켰다. 이어 출연한 홍진경에게도 유재석은 “주부님이기 때문에 음식에 특화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주겠다며 요리를 요구했다. 홍진경 역시 식스맨의 후보 자격으로 유재석을 만난 상황이었으며, 그녀는 프리다 칼로 분장을 한 채로 ‘유럽춤’을 추며 자신의 유머 감각을 어필하던 중이었다.
진행자로서 유재석은 인물의 특질을 기민하게 파악해 구체적이고 독보적인 캐릭터를 덧입혀 주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고, ‘식스맨’은 그런 유재석의 능력이 돋보인 에피소드였다. 홍진경 역시 유재석의 제안으로 장소를 주방으로 옮긴 뒤,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요리 실력은 다른 식스맨들에게는 전혀 요구되는 자질이 아니었다. 게다가 모델이자 DJ, 사업가로서 다양한 성취를 이룬 홍진경을 굳이 어울리지 않는 주부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방송의 흐름은 어딘가 어색했다. ‘식스맨’ 에피소드를 통틀어 등장한 여성은 이효리와 홍진경, 단둘이었으며 이들은 전혀 다른 개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동일한 ‘주부’라는 캐릭터를 얻었다. 기혼 여성을 주부로 등치시키는 유재석의 발상이 악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맥락을 비약시키면서까지 여성 출연자들을 주부로 명명하는 그의 태도는 드물게 안일하며, 여성 캐릭터에 대해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이해와 상상력이 고갈되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유재석은 일주일에 3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의 동료들 중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여성 연예인은 단 3명에 불과하다. KBS [해피투게더]의 박미선은 ‘불운한 주부’를 전담하고, 김신영은 조세호의 짝패로서 무성적인 존재로 활용된다.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의 송지효는 드물게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에이스 역할을 확보했지만, 지금도 종종 ‘월요 커플’이라는 명목하에 개리의 간섭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인물처럼 묘사되고는 한다. 시즌제를 예고한 KBS [나는 남자다]와 새롭게 시작하는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는 아예 여성 진행자가 출연하지 않는다. 유재석의 세계가 다양한 남성들로 채워지는 동안 그에게 여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적극적이고 사려 깊은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여성 동료는 언제나 태부족이다. 물론 유재석은 여성들에게 친절하다. 초대 손님을 공주님처럼 대접하고, 거리에서 만나는 보통의 어머니들에게 존경을 표현한다. 하지만 공주, 어머니, 혹은 주부와 같은 역할에 한정되는 순간 여성 개개인의 서사와 특질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필터를 거쳐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들은 결국 왜곡된 여성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재석의 태도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편향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에 비하면 그야말로 ‘양반’인 수준이다. KBS [개그콘서트]를 비롯한 코미디에서 여성을 향한 불만을 폭력적으로 드러내는 태도는 말할 것도 없다. JTBC [마녀사냥]을 전후로 우후죽순 쏟아진 일련의 ‘상담’ 프로그램에서 검증되지 않은 상담자들이 나누는 여성 차별적인 대화는 코미디의 과장된 장치가 제거되어 있기에 더욱 위험할 지경이다. MBC 에브리원 [신동엽과 총각파티]는 남성들의 얄팍한 판타지를 위해 여성의 심리를 편의적으로 동원하고, [결혼 터는 남자들]에서 김성주는 ‘가부장적인 이야기’에 ‘더 가부장적인 이야기’로 대응한다. 올리브 [오늘 뭐 먹지]에서 성시경은 “엄마가 이런 짬뽕 만들어주면 중국집 안 간다”며 끝내 요리는 엄마의 영역이라는 듯 말했고, 엠버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어떻게든 그녀에게 ‘천생 여자’라는 자막을 붙이며 안도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의 무게추는 어느새 남성 중심의 세계관으로 기울어버렸고, 든든한 무게 아래서 남성들은 젠더 감수성에 대한 학습이나 성평등에 대한 자기 검열에는 전혀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판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반발할 시간과 힘을 가진 여성 예능인은커녕, 중립적인 감각과 지식을 갖춘 남성 예능인마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무한도전]에서 홍진경은 여성이라는 자신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왜 남자만 써”라고 거듭 물었다. 사실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녀가 발탁될 필요는 없으며, ‘웃음’이라는 절대평가의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제작진이 굳이 홍진경의 질문에 대답할 의무도 없다. 그러나 남자만 썼을 때 발생하게 되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프로그램이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것이 신사의 매너라면, 왜곡하지 않는 것은 진행자의 매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매너에 엄격한 진행자인 유재석조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을 오해하고 간편하게 분류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적신호다. 웃음을 만들기에도 힘든 마당에 성평등이라는 섬세한 이슈에 대해 재정비하는 것은 벅찬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 기어코 해내는 것이 ‘도전’ 아니면 무엇이겠나.
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