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경 경사(맨위), 가운데 왼쪽부터 최현주·민소라 순경, 민새롬 경장, 우정미 순경(맨 아래) © News1
맨발로 추위에 떨고 있는 치매노인에게 자신의 양말과 신발을 내어준 '맨발 여경' 최현주(26) 순경 이야기가 이번주 내내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가족을 찾는 심정으로 할머니를 찾던 중 차갑게 식은 할머니의 맨발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신발을 벗어 신겨드렸다"는 신입 여경의 따뜻한 마음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줬다.
8일에는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던 남성을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발견하고 현행범으로 체포한 '야무진 여경'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여성의 다리를 휴대폰으로 찍은 뒤 '히죽히죽' 웃던 대학생을 붙잡은 권수경(35·여) 경사는 휴대폰에 있던 다른 여성들의 사진이 친구라고 주장하던 대학생에게 "이름을 말해 보라"고 추궁해 말문을 막은 뒤 대학생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여고생의 마음을 돌려세운 여경도 있다.
경찰 제복을 입은지 4개월째인 배보영(26·여) 순경은 지난달 서울 마포대교 전망대 부근에서 "왕따로 괴롭다"며 자살을 시도하려 했던 A양과 이야기를 나눈 뒤 "너를 위해 울어줄 친구 한 명이면 된다"며 A양을 위로해 A양을 무사 귀가 시켰다.
지난 1946년 여성간부 16명과 여경 1기생 64명으로 출발한 여경이 '1만명 시대'를 맞게 됐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의 여경 수는 9700여명이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진행될 공채를 감안하면 올해 안에 여경 수는 1만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앞선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범죄자 검거는 기본이고 특유의 섬세함과 감수성으로 구호활동에 있어서는 '남경'보다 특출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경찰 관계자는 "공채와 달리 여경을 뽑는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특채에서는 여성 선발인원이 남성을 웃돌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말그대로 '여경 시대'다.
◇경쟁률 166:1에 이르기도…헤어디자이너·복서·대기업 출신 등 이력도 다양
이렇다 보니 여경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여경 891명을 선발했던 2013년 공채에선 1만7682이 지원해 19.8:1로 집계됐던 경쟁률은 지난해 23.4:1까지 치솟았다. 346명을 뽑았던 올해 1차 시험에는 1만3297명이 지원해 38.4:1, 207명을 선발하는 2차 시험에는 1만5711명이 몰려 75.8: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경기지방경찰청은 올해 2차 일반 공채를 통해 5명을 뽑을 계획이었는데 8일 집계 결과 831명이 몰려 166: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특이한 이력을 가진 여경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헤어디자이너 출신 우정미(34·여) 순경은 명절 때면 독거 노인들의 집을 찾아 직접 이발과 미용봉사를 벌인다.
지난 2월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한 신임 경찰관 민소라(26·여)순경은 복싱 선수권대회 고등부 46kg급 1위, 전국제육대회 복싱 고등부 48kg급 3위 등 성적을 갖고 있다. 민 순경은 "여성을 보호해주는 경찰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대기업을 박차고 경찰에 입문한 여경도 있다.
2005년 1월 삼성전자에 입사했던 반미영(33·여) 경장은 2012년 10월 사이버 수사요원 특채 시험에 합격해 경찰에 입문했다. 반 경장은 인터넷 신문 기자가 특정 사이트 회원들로부터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소장을 접수하고 100건이 넘는 댓글의 IP를 일일이 추적해 무더기로 입건하는 등 자신의 재능을 업무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합기도 4단, 유도·태권도·특공무술 2단 등 도합 '무술 10단'인 민새롬(27·여) 경장은 지난해 3월 귀가 하던 중 버스에서 난동을 피우던 주취자를 제압하기도 했고 국내 최연소 경찰관 우정수(19·여) 순경은 지난 2월 강도가 현금카드와 스마트폰을 빼앗아 달아났다는 신고를 듣고 현장에 출동해 흉기를 들고 있던 용의자의 팔을 제압해 검거하는 등 곳곳에서 '이색' 여경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섬세함·공감능력 탁월…성범죄 관련 아동·여성에 대한 배려 돋보여
흉악범과 대치하는 상황 등이 종종 발생하기도 하는 일선 현장에서 여경들이 '남경'만한 대처능력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전·현직 경찰 고위 간부는 여경들이 섬세함·공감능력 등 감성적인 면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능력또한 남경 못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세월호 참사´ 5일 뒤인 지난해 4월20일 실종자 가족이 눈물을 흘리자 눈물을 닦아주던 여경. © News1
경찰청 김정훈 경무인사기획관은 "경찰 업무에 있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중요한데 여경들이 섬세할뿐더러 공감능력이 뛰어나 주민친화적 업무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이는 여경이 갖는 큰 장점이고 여경뿐 아니라 모든 경찰관이 갖춰야할 자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스스로 공부도 많이하고 능력이 우수한 자원들이 많이 들어 오는 것"이라며 "비율 제한이 있는 일반 공채와 달리 남·녀 구분없이 뽑는 경찰행정학과 특채의 경우에는 다른 일반공무원과 마찬가지로 (합격하는)여성의 비율이 50%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미아리 포청천'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원조 스타 여경' 김강자(70) 전 서울 종암경찰서장도 "성폭력범이나 강력범을 단속할 때 선천적·신체적 부분에서는 남경보다 약할지 모르지만 무도로서 잘 단련하면 남성 이상으로 현장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실제 이런 것들을 직접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 현장 등에서 남성 경찰은 여성을 조사하거나 제압할 때 성추행 시비 등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 여경을 투입함으로써 그런 오해와 상황을 만들지 않고 상황을 잘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또 "성범죄 관련 아동을 조사할 경우 여경은 부드럽고 따뜻한 고유의 심성, 혹은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 접근해 피해자로부터 공감을 이끌어 내는 조사를 하거나 여성의 경우에도 진정성 있는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