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날, 마음껏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술집이 있다면 어떨까? 공허한 마음과 몸을 채워 줄 요리, 만족스런 연애와 사랑을 위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지? 남녀가 섹스 전과 후에 먹는 음식은? 이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는 곳이 있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은밀한 연애 이야기로 만들어진 맛있는 메뉴가 매주 채워지는 곳. 김정훈 연애칼럼니스트가 이 시대의 편식남·편식녀들에게 추천하는 힐링푸드, 별의별 야(한)식(탁)!
'야식'은 '야한 식탁'의 줄임말이다. 별의별 야식이라고 해서 다양한 야식메뉴를 준비해 놨을 거란 기대는 금물. 우리 가게엔 메뉴판이 없다. 야한 식탁에 오르는 메뉴는 손님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메뉴는 손님이 가진 연애와 섹스에 대한 고민을 들어본 뒤 만들어주겠다는 것이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인 이 곳, '별의별 야식'이란 술집의 콘셉트다.
말하자면 이곳은 연애상담을 할 수 있는 술집인 셈이다. 연애칼럼니스트인 내가 이곳을 열게된 이유는 지면 상으로만 상담을 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서다. 그래서 본인을 위해 만들어진 음식과 술을 먹으며 연애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그런 술집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본인의 고민을 털어놓는 분위기는 역시나 술자리다. 식욕과 성욕은 궁극적으로 맞물리는 법이기도 하고.
미영씨는 그 첫 번째 손님이다. 물론 가명이다. 가게를 연 지 3일 째 되던 날 밤, 어디선가 술을 잔뜩 마시곤 "화장실을 잠시 써도 되겠냐"며 가게로 들어왔다. 볼일을 보고 나와선 가게 분위기를 잠시 구경하더니 다짜고짜 타바스코를 넣은 데킬라를 달라고 했다. 타바스코 10방울을 반드시 떨어트려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사진=Marina(im.back) in Flickr
"나 안보고 싶어?" "응. 너랑 (섹스)하고 싶어."
그는 늘 이렇게 대답하거든요.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보고 싶단 말을 기대하는 그녀에게 그는 늘 한결 같았다. "남자에게 있어서 하고 싶다는 말은 보고 싶다는 말과 똑같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라 생각하는 그녀였다. 최근에 그와 함께 한 데이트를 떠올려 보면 섹스 외엔 별다른 게 없었다.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그가 꽤 귀엽기도 했다. 귀여운 애교와는 달리 상당히 거친 그의 침대 위 스킬이 무엇보다 맘에 든다는 건 친구들에게도 말 못한 그녀만의 비밀이다.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난 건 6개월 전 우연한 술자리였다. 나쁜 남자에게 상처받아온 과거의 경험상 이제는 착하고 헌신적인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그녀였다. 하지만 그는 누가 봐도 명백히 나쁜 남자. 습관은 무서운 것이었다. 나쁜 남자라는 것의 정의는 딱히 정해진 바가 없었지만 그녀 친구들의 결론에 그녀 역시 딱히 반발을 할 수 없었다.
▲사진=avrene in Flickr
"만나면 잘해주지만 만나지 않을 땐 불안하게 하지?" "바쁘다는 핑계로 네 사생활엔 관심이 없지?" "네가 필요할 땐 곁에 없고 자기가 필요할 때만 너 찾지?" "그리고 연락해오는 시간대가 대부분 10시 이후지?" 친구들의 지적은 하나같이 모두 맞아 떨어졌다.
친구들은 눈치를 보던 그녀에게 엄청난 질타를 쏟아냈다. 냉정히 생각하면 친구들의 말이 100% 옳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외모와 화술, 직업, 언제든지 흔쾌히 열리는 지갑을 가지고 어디든 꿀리지 않고 갈 수 있는 외제차를 남자, 3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각 따윈 없다는 것까지.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에게 빠져있었다. '다른 건 불확실하다해도 섹스할 때 나를 위해 땀을 흘리는 모습만은 거짓말이 아니니까'라며 그녀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녀는 남자에 따라 여자도 달라지고 여자에 따라 남자도 달라진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다. 2주에 한 번꼴로 만나는 둘은 밥을 먹자마자 섹스, 영화를 보자마자 섹스. 결국 섹스 없인 데이트코스를 밟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어찌하리. 너무 바쁜 이 남자. 2주에 한 번이라도 보는 게 어디며, 1초도 안 쉬고 스킨십을 시도하는 이 남자가 귀엽기도 하고, 2주마다 한 번씩 하는 섹스가 그리 지겹지만도 않다. 이런 게 속궁합이라고 하는 건지.
모든 남자가 섹스 머신은 아니다. 섹스광인 여자가 넘쳐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와 그녀의 관계는 섹스 없인 유지될 수 없는 관계로 분명히 굳어져 버렸다. 스킨십으로 사람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처음 느꼈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나지막이 내뱉는 그의 신음소리를 듣고선 도저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자주 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카카오톡으론 시도 때도 없이 야한 농담을 즐겼다. 그때마다 그 목소리가 생각나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린다는 그녀였다.
▲사진=judgepera in Flickr
하지만 그녀는 외로웠다. 그에게서 만족을 느끼는 순간을 굳이 꼽자면 섹스를 할 때 빼곤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는 늘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녀를 만족시킬 수준은 아니었다. 그가 문제인건지, 본인의 욕심이 큰 건지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친구들이야 그 원인을 그에게 돌렸지만, 그를 사랑하는 그녀는 자신에게서 그 이유를 찾기도 했다.
그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데킬라를 연거푸 들이키는 그녀를 보니, 마침 갖고 있던 인도산 졸로키아 고추가 생각이 났다. 세계에서 제일 매워 기네스북에 오른 그 졸로키아 고추로 만든 기름에 볶아 다진청량고추와 페퍼론치노까지 잔득 뿌린 특제고추닭발을 그녀에게 만들어 줬다. 데킬라와 어울리는 안주는 결코 아니었지만, 지금 흘리는 눈물과 콧물로 그녀의 아픔을 종결시켜주고 싶었다. 내일 아침에 화장실에서 겪어야할 쓰라림을 통해 자극에의 중독이 얼마나 쓰라린지도 제대로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속궁합 좋은 나쁜 남자를 끊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달고 짠 건 끊어도 매운 건 끊기 힘든 것과 비슷하다. 그녀 역시 그때의 닭발이 먹고 싶다며 다시 찾아온 적이 있다. 다음날 엉덩이가 찢어질 뻔 했지만 역시나 이 맛은 못 끊겠더란다. 그녀는 첫 등장과 마찬가지로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에 갔고, 난 테이블에 올려놓은 그녀의 스마트폰을 옮기느라 우연히 팝업 된 채팅창을 보게 됐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야한 농담과 오늘 하고 싶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그때의 그 남자인지 다른 누군가인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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