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의 아침에 세운 계획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 없다.
왜냐 하면 아침에 위대했던 것이 저녁에 미미해지고,
아침에 진실했던 것이 저녁에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칼 융은 <인생의 단계(The Stage of Life)>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는데 뉘앙스가 조금 다른 번역도 있다.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의 것이 좋다. 그러나 뜻은 뒤의 것이 더 분명하다. 융은 인생의 곡선은 반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오전과 오후, 또는 전반과 후반. 이중 오전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고, 오후는 자기를 향해 다가가는 시간이다. 전반은 '세상 밖으로'이고, 후반은 '내 안으로'다.
과연 그런가? 인생은 오전과 오후가 달라야 하나? 나는 동의한다. 인생의 오후는 오전과 달라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그러지 못한다. 융은 "사람들이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인생의 오후로 넘어간다"고 지적한다. "훨씬 더 나쁜 것은 늘 그랬듯이 자신의 진실과 이상이 도와줄 것이라는 착각으로 걸음을 옮긴다"고 한다.
그러나 오전의 진실과 이상이 오후에는 미미해질 수 있다. 거짓이 될 수 있다. 오후에는 오후의 계획이 필요하다. '세상 밖으로'에서 '내 안으로' 돌아서는 유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비롯된 곳으로, 존재의 근원으로 되돌아가야 하니까.
인생의 오전에 나는 어디를 향해 갔던가? 미국의 심리학자인 웨인 다이어는 사람들이 오전에는 '잘못된 자아의 여섯 가지 거짓말'을 향해 간다고 정리한다.
1. 나는 곧 나의 소유물이다.
2. 나는 곧 내가 하는 일이다.
3. 나는 곧 남이 생각하는 나다.
4. 나는 남과 다르다.
5. 나는 내가 잃은 것과 분리되어 있다.
6. 나는 신과 분리되어 있다.
이 여섯 가지가 인생의 오전에 벌어지는 거짓 나의 거짓말이라면 오후에는 참나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 인생의 방향을 바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하는 일과 남이 인정해 주는 내가 곧 내가 아니라는 진실을 깨우쳐야 한다. 너와 나는 남남이 아니고, 모든 것은 신의 섭리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웨인 다이어는 인생의 오후에 제대로 유턴을 하면 그런 신호가 나타난다고 한다. 참나의 진실로 이끌어주는 여섯 가지 신호가 켜진다고 한다.
1. 더 하고, 더 가지라는 자아의 되풀이되는 주장에 관심이 덜 간다.
2. 덜 하는 쪽으로 돌아선다.
3. 빛이 아닌 그림자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이룬다.
4. 분리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통합에 대한 믿음이 온다.
5.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과 하나로 연결된다.
6. 우리를 창조한 지혜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는 인생의 오후에 이런 신호를 보았나? '더' 대신 '덜'이란 신호, '남남' 대신 '우리'란 신호, '양지' 대신 '음지'란 신호, '나' 대신 '신'이란 신호……. 이런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유턴할 때 유턴하지 않은 것이다. 유턴 신호를 놓치거나 무시한 것이다. 오전의 신호대로 더 하고 더 가지는 쪽으로 무작정 직진하고 있는 것이다. 오전의 진실과 이상에 죽도록 매달려 있는 것이다.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