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설업체 입사 6년차인 A모 대리(36)는 지난해 2월 본사 재무파트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지사로 옮겨 근무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제외하곤 외국 경험이 없던 A대리가 해외근무자로 뽑힌 이유는 부서에서 유일하게 '미혼 남자'에 '대리급 직원'이어서였다. 해외근무자 지원율이 저조하자 사실상 '등 떠밀리 듯' 발탁된 것.
일반적으로 해외에서도 건설현장은 도심과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여성보다는 남성 직원들이 파견되는 게 일반적이다.
A대리는 자신이 선발된 데 대해 처음엔 당황했지만 해외근무 경력이 승진 등 인사고과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변 이야기를 듣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당시 좋은 배우자와 가정을 꾸리길 기대했던 부모님에게는 "2년 뒤 돌아오면 결혼부터 하겠다"며 호언장담하고 아부다비로 향했다.
하지만 1년9개월이 지난 현재 A대리는 불안하고 초조하다. 국내에 있는 회사 동기들로부터 해외파견 기간이 1~2년 연장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어서다. 회사에서 다음 차례 해외근무자 신청접수를 진행했는데 이렇다할 신청자가 없어 A대리가 눌러 앉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다.
최근엔 아부다비 지사에서 함께 근무하는 상사들마저 "A대리 없인 일이 안된다", "A대리 떠나면 아부다비는 누가 지키냐" 등 은근히 압력을 넣는 일이 잦아졌다. 심지어 한 상사는 '어차피 결혼했어도 해외나오면 못 보는데 이왕 나온 거 여기서 짝 찾으면 더 좋지 않겠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얼마 전 A대리는 업무차 아부다비를 찾은 대학 선배를 만나고 더 불안해졌다. 다른 대형건설업체에 다니는 이 선배는 1년으로 예정됐던 해외근무가 2~3년씩 늘면서 자천타천 '중동 전문가'가 돼가고 있고 결국 5년째 '노총각'으로 타지를 떠돌게 됐다는 것이었다.
A대리는 "올해 초 한 신입사원이 입사면접에서 해외근무 제안을 받자 '그런 곳에 갈 바에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것이 사내게시판에서 화제가 됐었던 적이 있었다"며 "이처럼 젊은 사원들이 해외근무를 기피하면서 퇴직한 실버 인력을 재고용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A대리는 해외근무가 연장되는 것도 걱정이지만 귀국해서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그는 "전임자인 B과장도 미혼이란 이유로 왔다가 돌아갔지만 아직까지 솔로를 탈출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나이여서 연애가 힘들고 자칫 또다시 해외 발령이 날 수 있도 있어 결혼 얘기를 쉽게 꺼내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며 푸념했다.
머니투데이